송재익 정치학 박사
(사)국가발전정책연구원 부원장
2024년 쌍청당 세일사 영모제(永慕祭)가 11월 1일 11시에 은진송씨대종회에서 주관하여 쌍청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세일사는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로 쌍청당공 송유 선조의 묘소(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 산소골)에서 진행되었다. 은진송씨대종회에서 쌍청당 세일사를 지내는 것은 쌍청당 송유께서 고려시대 초기 회덕(현재 대전시)에 정착하면서 자손이 번창하고 고려의 토성분정(土姓分定)과 본관 제도에 의해 은진(恩津)을 본관으로 하는 은진송씨가 된 이유 때문이다.
필자는 야은충현공파 25대손으로, 2022년 10월 22일에 우암 송부자(송시열 선생) 탄신 415주년 추향제(秋享祭)에 참석하며 우리 선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생 늦게 자기의 조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선조들께 죄송할 뿐이다. 필자는 원일회 송희원 회장님으로부터 쌍청당 세일사가 11월 1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참석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행사 당일 11일 1일 서울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는데 서울에서 기차편으로 내려오는 중에 빗방울이 조금이 내렸으나 오후에는 비가 그쳤다. 내려오는 중에 계룡시에 사는 송석태 일가의 전화를 받으니 본인도 참석한다고 하여 계룡시에서 차로 이동하여 대전역에서 만나 쌍청당으로 가니 30분 전에 도착하였다. 시간이 나서 주변 한옥 건물들을 둘러보니 송유, 송갑조 선친들의 묘와 재실과 쌍청회관 건립 내력, 건립을 위한 후원 내역 등을 기록한 벽면도 보고, 입구에 위치한 쌍청당 송유묘표 등을 보며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은진송씨는 총 39개파로 거대한 문중을 형성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 자손들이 학문의 열정으로 과거급제자가 많이 배출하며 새로운 가문을 형성하며 파가 새로이 형성된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은진송씨 문중을 알고자 들어가면 부정적인 말들이 많았다. 그 이유 역시 똑똑한 집단은 개인 위주로 나가기 때문이고 부족한 집단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구성원들이 단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느낀 점은 그렇지 않았다. 은진송씨 문중의 일가들 5,221명과 각 종파 종중과 친목단체 등으로 헌성금 21억여 원을 모아 1994년 착공하여 1998년 쌍청회관을 준공하였다. 본 회관은 선조들의 훌륭한 정신을 후손에게 계승 발전시키고 우리 은송인은 누구나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문중의 각종행사는 물론 회의 및 예절교육, 세미나 등 후손에게 유익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최근은 전통혼례를 치르는 웨딩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2006년에는 대전 중구에 위치한 뿌리공원에 세운 ‘은진송씨상징탑’은 전국의 일가들의 뜨거운 성금으로 이루어졌음에 쌍청당 할아버지의 산소를 성묘하러 오는 자손이나 뿌리공원을 찾는 일가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다. 필자도 한국효문화진흥원의 연구과제를 추진하며 뿌리공원의 ‘은진송씨상징탑’과 족보박물관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또한 2013년에는 『은진송씨세적사(恩津宋氏世蹟史)』를 발간하여 은진송씨의 선대와 은진의 내력 등 뿌리를 알고 회덕 및 대전에 은진송씨 일가들이 많이 살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도록 하며, 은진송씨의 역사인물과 선조들이 창작한 문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며 가문의 일원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숭조돈목(崇祖敦睦) 즉 먼저 일가부터 아니 일가를 넘어 한국사회의 조상을 숭상하고 이웃들과의 돈독한 화목을 강조하며 가정에서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과 실천이 있다면 우리나라와 사회, 가정이 건전하게 발전하는데 은진송씨 가문의 충효사상이 한국사회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21세기 현대 사회는 너무 빨리 변화한다. 특히 한국의 산업발전으로 경제력은 선진국에 들어서 세계 위상이 10대 경제국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만능의 사회는 많은 폐단을 낳아 가정, 사회, 국가의 기본체계가 흔들리며 사회기강이 문란한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변화는 나하고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손자손녀가 해를 당할 수 있다. 변화가 아무리 빠르다고 하여도 사회에는 지켜야 할 좋은 전통이 있고 나쁜 관행은 고쳐나가야 한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우리 은진송씨 가문이 나서 남이 해주길 바라지 말고 우리 일가들부터 행동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쌍청당 세일사를 참석하고 나서 우리 은진송씨 문중의 한사람으로 자만 아닌 자부심,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느낀 점 두 가지를 적는다.
첫째는 대전광역시는 조선말에 대전으로 새롭게 구성된 도시이다. 대전의 특징이 산업화에 따라 대덕연구단지가 1970년대에 시작하여 30년간 발전하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의 과학기술과 산업의 견인차 엔진역할을 하고 있다. 대전에는 우리 은진송씨 전통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은진송씨 문화 전통이 어우러지며 발전을 해야 한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2편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나온다. “옛 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안다”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지구는 자전하며 태양을 공전하는 것처럼 변화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들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구 판암동 쌍청당 산소골, 이사동 유교민속마을, 대덕구 송촌동 지역 등을 고려하여 대전시와 협력하여 은진송씨 가문을 넘어 대전시 시각으로 협력으로 우리의 전통 한옥마을을 조성하였으면 한다. 전주시에 가면 전통가옥 마을이 잘 조성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는 대전시는 동구, 중구, 서구, 유성구, 대덕구 5개 구로 구성되어있으며 대전시에는 대전문화재단이 각 구에는 문화원이 운영되고 있다. 대전의 문화르네상스를 위해 각 지역 문화 특성을 연결하여 문화 둘레기를 조성하였으면 한다. 단순한 지역 산, 능선을 연결하는 건강을 위한 둘레기를 넘어 지역 문화 특성을 활용하여 현재 있는 향교, 서원, 뿌리공원 및 한국효문화진흥원, 우리 은진송씨 사적들, 계족산, 장태산자연휴양림을 연결하는 대전만의 둘레길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의 주위의 산 및 성터를 연결하는 둘레길, 그리고 제주도의 특성을 살리는 둘레길처럼 말이다.
맹자(孟子) 이루장구상(離婁章句上) 상편에 “스스로 해치는(自暴)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스스로 자신을 내팽개치는(自棄) 자와는 더불어 일할 수 없다고 하며, 말만 꺼냈다 하면 예(禮)와 의(義)를 비난하는 것을 스스로 해친다고 하고, 자신은 인(仁)에 머물 수 없고 의(義)를 따를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자신을 내팽개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갑진년 2024년을 마무리 하면서 새해에는 은진송씨 문중도 원로분들과 중간세대,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더불어 어른을 공경하며 아래 사람을 예로 대해주며 우리 구성원들이 스스로 해치고, 스스로 내팽개치지 않고 가문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대전시 문화 전통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졸고를 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