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방차량 골든타임, 모두의 해피타임
상태바
[기고] 소방차량 골든타임, 모두의 해피타임
  • 세종충청뉴스
  • webmaster@sj-ccnews.com
  • 승인 2024.06.20 0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안동남소방서장 오경진
천안동남소방서장 오경진

어느 퇴근길이었다. 전방으로 연기가 보이고 앞선 차량이 속도를 줄이자 도로는 금세 주차장으로 변했다.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났나 싶기 무섭게 모든 차량이 일제히 좌우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길이 트인 것이다. 소방관 필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꼼짝달싹 못한 도로에서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으로 히브리 민족이 살아남았듯 이 길을 통해 우리 국민의 생명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기억이었다.

기적은 쉽게 일어나는 게 아니어서 기적인지 모른다. 종교적 역사를 제외한다면 기적은 많은 이들의 일치된 마음과 강력한 의지가 필요했다. 더하여 하늘의 운도 뒤따라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1597년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이 그랬고,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초기 34만여 연합군을 최소의 희생으로 감행한 덩케르크철수(Withdrawal of Dunkerque)가 그러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기적과도 같은 그들의 선전은 또 어떠했는가.

전국 어디를 가나 소방차를 위해 길을 양보하는 건 이제 특별함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의식과 시민의식과 배려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본보기의 다름 아니다. 한데 이타적인 마음과 행동을 향해 갈라져야 할 우리의 홍해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니 불법주정차 문제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새벽길을 향하다 보면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풍광을 마주하여 떠오르는 햇살과 함께 힘찬 하루를 내딛게 한다.

당국에서는 실제 불이 난 상황을 가정해 주정차 위반 차량의 강제처분 훈련을 진행하곤 한다.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지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소방관들이 내려서 차량을 밀어도 움직이지 않자 그 즉시 소방차로 차량을 밀어버리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화전을 가로막고 있는 차량의 경우는 소방관들이 망치로 승용차 유리를 깨고 소방호스를 연결하는 모습도 보이는바, 이 같은 상황을 처음 보는 분들은 소방차가 저렇게까지 차량을 부숴도 되나 싶을 거다. 하지만 앞으로는 소방법이 개정돼서 소방차 앞길을 막는 차량을 강제로 견인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가능할 수 있다. 예전에는 소방차가 긴급 상황에서 출동할 때 좁은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불법주정차 된 차량 때문에 반대로 돌아가야 해서 황금 같은 시간이 자주 지체되는 일들이 발생했다.

불이 났을 때 한시라도 앞서 도착해야 함에도 불법 주차된 차량으로 시간이 지체되면 그만큼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소방법이 개정은 됐지만 실제로 차량을 강제 처분한 일은 거의 없었다. 불법주정차 된 차량이라도 파손을 하게 되면 민원 처리와 보상을 해야 하고 어떤 차량을 밀고 들어가야 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아 잘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유관기관에 견인 조치를 요청할 수 있고 손실보상에 따른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에 강제 처분을 확실히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내가 실수로라도 소화전 근처나 좁은 골목길에 불법주정차를 해서 유사시 차량이 파손되더라도 별도의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2017년 제천 화재 당시 소방차량 및 장비의 통행을 막은 불법주정차 한 20여 대로 인해 도착시간이 늦어지고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끔찍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했다. 이런 법은 국민이 반대 안 한다. 아무리 강력해도 국민이 원하는 법이 있는데 그걸 정치인들만 모른다거나, 더 이상 소방관들에게 유리 깨고 물건 부쉈다며 손해 배상하는 말도 안 되는 법은 없어져야 한다. 또한 이게 법이지 진짜 법 같은 법 한번 나오네 등등 대부분 소방 당국의 조처에 대해 긍정의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또한 지난해에 암투병 환자를 태워 응급실로 향하던 사설 구급차가 차선 변경을 하던 중 개인영업용 택시와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었다. 구급차가 택시 기사에게 명함을 건네며 차 안에 응급환자(폐암 말기)가 타고 있으니 일단 후송 후 보험처리를 하겠다고 한 뒤 이동하려 하자, 택시 기사가 이를 막아서고 실랑이 끝에 10여 분의 골든타임을 지체, 병원 도착 5시간 후 구급차에 타고 있던 환자가 사망했다는 보도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할 따름이다.

불법 주차된 차량을 밀고 진행한다 해도 신속히 도착하지 못하면 큰 피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내 마을의 입구로 진입하는 길에 소방차가 들어올 수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갖추어야 한다. 소방차 출동로와 소화전 인근의 불법주정차는 공존과 역행하는 막다른 질주일 뿐임을 인식하면 좋겠다. 모두가 도로 위의 기적을 연출한 것처럼 불법주정차의 근절을 위해 다시 한번 힘을 모을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